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쿠라키 마이 (문단 편집) == 음악 스타일 == 초기에는 [[우타다 히카루]]와 음색이 비슷해서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소리바다]]를 뒤지다보면 파일이름은 우타다 히카루 노래인데 정작 곡은 쿠라키 마이 노래인 식이 제법 있었다. 특히 Love, Day After Tomorrow. 2000년 초 방송 헤이헤이헤이에서 진행자 다운타운의 낚시에 걸려 우타다가 쿠라키 마이가 날 따라했다는 식으로 말했다가, 팬들끼리는 피터지게 싸우고 우타다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다운타운은 사과방송을 하는 등의 난리가 나기도 했다. 데뷔 초 첫 싱글과 정규앨범이 큰 주목을 받으며 우타다 히카루의 강력한 라이벌로 손꼽혀왔으나 이후 지속적인 하락세를 탔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점은 신비 주의의 한계로 빙 계열인 이상 곡의 홍보는 타이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명탐정 코난의 타이업과 몇개의 CM (Stand Up, Feel Fine), 드라마 타이업 (Reach For The Sky)을 제외하고 크게 좋은 타이업을 받지 못했다. 미디어 매체 노출이라곤 CDTV의 앨범 트리뷰트, 인터뷰 정도 밖에 없었고 일절 음악 방송에 출연을 하지 않고 홍백가합전만 나오곤 했다. 우타다 히카루는 신비주의는 지키되 음악 방송이나 예능에 출연하여 싱글과 앨범을 프로모션해 친근한 이미지와 판촉 홍보 효과를 누렸으나 쿠라키 마이는 초기 기자 스튜디오의 오착으로 인해 급격한 하락세를 맞이한 걸로 봐도 무방한데, 초창기 판매량만 보면 B'z와 더불어 전국 돔, 아레나 투어를 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당시 빙 레이블의 트렌드인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인해 지금도 음반 판매량의 저하가 지속중이며 최대 동원 규모의 공연장도 [[무도관]]으로 한정되어 버렸다.[* 다만 무도관이 2020 도쿄 올림픽의 유도 경기장으로 사용됨에 따라 2019년부터는 공연장으로서의 활용을 중지하기에 투어 파이널에서 아레나 투어를 기대할 수도 있다.] 더불어 거의 전담 작곡가의 포지션인 오노 아이카의 창작력도 매우 지속적으로 하락 중이다. 다만 2017년 코난 극장판 엔딩으로 타이업된 싱글 도월교가 롱런 히트를 치며 오랜만에 홍백가합전 출연까지 하는 등 잠시 치고올라온 적이 있다. 이후부터는 다시 평소처럼 완만한 하락세를 타고 있지만 그래도 아래의 판매량 표에서 드러나듯 싱글이든 앨범이든 음반을 발매하면 무조건 사주는 팬덤 2만 명 가량은 콘크리트로 보유하고 있는 편이다. 여솔 시장에서 이 정도를 꾸준히 팔 수 있다는 것은 절대 나쁜 상황이 아니며, 데뷔 초의 임팩트와 전성기를 생각하면 아쉬울지 몰라도 한 명의 여솔로서는 긴 연차에 비교적 가늘고 길게 가고 있다. 데뷔 초부터 2003년도까지 항상 [[포니테일]][* 정확히는 반묶음한 분수머리에 가깝다.][* 포니테일은 FAIRY TALE때 처음 선보인것.]을 고수하였다가 'Time after time ~花舞う街で~' 싱글을 발매하며 처음으로 머리를 풀고 나왔다. 나왔다고 해봤자 싱글 자켓이랑 프로모션 포토샷 밖에 안 나왔지만.. 이후로 계속 풀고 나와 성숙한 이미지를 비추고 있다. 또한 체중은 불명이나 꽤 마른 체형으로 데뷔초엔 어깨가 드러나는 탱크탑과 스키니핏바지를 자주 입었다. (Always pv에서의 복장이 그 예시이다.) 오리콘 차트에서 2위를 가장 많이 한 가수인데, 충분히 1위 하고도 남을 판매량이 기자 스튜디오의 발매 스케줄 삽질로 인해 항상 2위이다. 총 12개의 싱글이 2위. 그래도 여성 가수로는 유일하게 데뷔 이후의 모든 싱글이 TOP 10 안에 든 기록을 가지고 있다[* 여성 그룹까지 합치면 [[모닝구 무스메]]도 해당된다.]. 또한 데뷔 때부터 재일교포 3세 루머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언론사(여성잡지 럭키세븐)에서 그녀의 아버지가 재일교포 2세이며, 일제말 세계2차대전 중 강제징용으로 끌려온 한국인 부부의 자식이라는 걸 대서특필했다. 쿠라키 마이의 아버지는 그 후 일본인 여성 아오노 키미코와 결혼해 쿠라키 마이 오빠와 마이를 낳게 되었다. 이런 언론사들의 보도에 대해 기획사와 마이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쿠라키 마이의 할아버지는 교토 출신, 교토 제국대학 출신의 시인 야마사키 사네하루이며 아버지는 영화감독 (쿠라키를 이용한 AV등으로 논란이 되었다) 야마사키 이소미이며 부모님 이혼 후 어머니와 자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부계가 재일이라는 것은 찌라시 이외에서 확인된 바는 없다. 2014년 11월 12일에 데뷔 15주년 기념 앨범 베스트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 커버를 데뷔 앨범 커버와 똑같은 컨셉으로 찍은 것이 눈에 띄는 부분. 또한 이에 맞춰서 12월 6일에 [[무도관]]에 15주년 라이브 콘서트를 치뤘다. [[코마츠 미카코]]가 쿠라키 마이의 광팬[* 빙 계열쪽은 다 좋아하는 듯하다.]이다. 쿠라키 마이를 동경했던 것이 연예계 진출의 계기이기도 하며, 쿠라키 마이 덕에 그녀 역시 [[명탐정 코난]]을 좋아하며, 굿즈도 사고 있다. 물론 15주년 라이브 콘서트도 보았다고. [[진홍의 연가]]의 주제가로 쓰인 doa의 도쿠나가 아키히토가 작곡한 [[渡月橋 ~君 想ふ~|'渡月橋 ~君 想ふ~ (도월교 ~그대를 생각하며~)]]'가 좋은 반응을 얻으며 각종 다운로드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잠잠하던 쿠라키 마이가 2010년대에 거의 처음으로 1위를 차지한 것이라 의미가 상당히 깊다. 간만에 마이를 대표하는 싱글도 나왔고, 올해 오리콘 차트 여자 솔로 싱글로는 판매량 1위를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M스테에도 2번이나 출연하고 12년 전 싱글 판매량을 뛰어넘고, 대부분 음원차트도 월간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이번 싱글을 통해 데뷔 싱글부터 지금까지 41개의 모든 싱글을 오리콘 TOP 10에 진입시켜 전무후무한 기록을 갖게 되었다. 여담으로 상술이긴 하지만 9월 13일, 교토 한정판이 추가로 발매가 진행되었다. 이로써 본 싱글은 총 5가지의 사양이 출시가 된 것. 이렇게 많은 사양을 발매한 것은 싱글은 처음이고, 앨범으로는 2009년 발매한 베스트 앨범 'ALL MY BEST'가 총 사양 10개로 부동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7년 11월 28일 기준, 이 싱글은 42주차를 진입하며 본인 싱글 차트주수 1위를 차지했다! [* 2위 : Love, Day After Tomorrow (30주)] 또한 '渡月橋 ~君 想ふ~ (도월교 ~그대를 생각하며~)'로 명탐정 코난 주제곡을 21곡이나 가창해 세계 기네스북 등재가 되어, 이를 기념해 베스트 앨범인 "쿠라키 마이X명탐정 코난 COLLABORATION 21 BEST ~진실은 언제나 노래에 있다!"가 2017년 10월 25일 발매 결정되었다. 12년만에 홍백가합전에 출장한다. 2005년 이후 4번째 출장이다. 추가로 일본 아이돌 SMAP의 팬이라고 한다. 어렸을때부터 SMAPxSMAP을 매주 챙겨보고 앨범도 사러가는 등 맙순이였다고. 가수로 데뷔한 이후 출연한 SMAPxSMAP에서 골수팬의 위력을 뽐내며 스마스마 퀴즈를 다수 맞추고 기무라 타쿠야의 콩트 "펫P짱"에도 출연. 노래코너에서는 2번 SMAP과 같이 노래를 불렀는데 그 후 엔딩코너에서 "지금 꿈인지 현실인지.."하며 감격하는 모습은 팬 그 자체. 지금은 안타깝게도 SMAP이 해체하는 바람에... 2018년 10월에 진행되는 라이브투어, 2019년 중 발매될 12번째 정규앨범인 Let's GOAL~ 장밋빛 인생과 2019년 20주년 라이브투어의 성과에 따라 다른 대부분의 빙 레이블 가수들이 피하지 못한 "코난의 저주"로 불리는 징크스를 깰지가 판가름나게 될 전망이다.~~근데 저주 판가름하기엔 이미 20주년씩이나 맞이할 정도로 롱런하고 있는데...~~[* 데뷔 20주년도 맞이한 이상 사실상 이 저주는 쿠라키에게 있어서는 무의미해졌다고 볼 수 있다. 앨범 판매량에 있어서 가장 불리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여성 솔로 아티스트로서 이만한 연차에도 기본 2만장은 깔고 가고 매번 여유롭게 오리콘 탑10 진입 기록을 이어가는 것은 보통 유지를 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닛케이 기준 인지도도 70 이상으로 굉장히 높은 편이고 아주 큰 규모는 아니어도 투어도 꾸준히 돌고있으니 그야말로 가늘고 길게 잘 버티고 있는 것. 무엇보다 초창기에 명탐정 코난의 주제가를 타이업한 가수들 중에서 쿠라키 마이처럼 롱런하는 가수는 B'z를 제외하면 죄다 은퇴, 활동휴지, 계약종료와 같은 수순을 밟아버렸다. 심지어 [[ZARD]]는 2007년에 사망해서 싱글이 더 나오지 못하는 실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